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어릴 적 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마구 질문해대지만,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배우기 싫어도 배워야 하고 더 배우고 싶어도 끝내야 하는 '정해진' 것에 적응하게 된다.
이런 '정해진'것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마음대로' 탐구해보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현재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학종으로 대학을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호기심'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의 수동적 태도가 문제여서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인문학이 그 해답이 될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인문학 강좌에 학생들이 얼마나 올 수 있으며 그 인문학 강좌를 학교의 창체 프로그램에 넣어본들 억지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보며 우리는 좌절하게 된다.
'정해진' 것에 익숙하게 만들어두고 능동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모순이며 폭력이다. '정해진' 질문과 답으로 점수를 매기고 그 결과로 판단하는 교육의 형태안에서는 비판적 사고를 측정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물론 학종은 '정해진' 틀을 깨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우리 자신부터 주위를 둘러봐라. 모든 것이 익숙한 환경, 직업, 시간의 틀 속에서 살고 있으며 아이들 역시 이런 세계속에서 살고 있다. 심한 경우는 이런 세계를 애들은 몰라도 되는 존재로 대상화하기도 한다. 세상의 민낯을 보여주기 싫어서 뉴스를 아이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부모도 봤다.
그렇다면. 이미 그 운명이 다한 호기심이 학종의 시작이 아니라면 학종의 시작은 무엇일까? 이런 '정해진', 어쩌면 '당연한'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들이 정말 그런지 질문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파악하는 눈이 생긴다.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부터 갖춰야 한다. 그럴려면 '정해진' 또는 '당연한' 권위부터 깨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당연함으로 뭉쳐진 권위를 깨내야 비로소 '평등함'을 이해하게 되고 그런 이해속에 '평등한' 관계맺기가 이뤄질 수 있으며 그런 관계맺기가 삶에 녹아들어 세상에 대한 태도가 생긴다. 그게 인문학이다. 철학, 문학, 과학 따위가 인문학이 아니다. 인문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 당연함과 권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가만 있어라'라는 권위와 당연함이 많은 아이들을 죽게만든 4월이 곧 시작된다. 당연하게 보이는 보행자의 좌측통행이 일본은 우측통행이다. 당연함을 거부하라 의문을 제기하라. 학종의 출발은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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